팬덤은 어떻게 일하고 행동하는가
스트리밍 총공에서 선거 운동까지, K-팝 팬의 노동과 행동주의를 다룬 연구 10편
K-팝 팬덤은 오래전부터 '일하는 팬덤'으로 불렸다. 음원 스트리밍, 투표, 번역, 홍보 영상 제작까지 팬들이 맡는 일이 산업의 한 축을 이룬다는 뜻이다. 2020년 미국 BLM 운동 때 K-팝 팬들이 해시태그를 점령하는 등 정치적 행동에 나서면서, 같은 조직력이 정치적 행동으로도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주목받았다. 이 특집은 그 두 얼굴, 곧 노동과 행동주의를 함께 다룬 연구를 모았다.
노동 쪽 연구는 평가가 엇갈린다. GOT7 중국 팬을 연구한 논문은 팬 노동이 산업에 꼭 필요한 창조적 노동이지만 동시에 착취이기도 하다고 본다. ARMY를 연구한 다른 논문은 같은 무급 노동이 팬을 한국 소프트파워의 능동적 행위자로 만든다고 해석한다. 착취인가 권한 강화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K-팝에서도 결론 없이 이어진다.
최근 연구의 초점은 플랫폼으로 옮겨 갔다. 위버스, 버블, 리슨 같은 팬 플랫폼이 자생적으로 굴러가던 팬 커뮤니티를 유료 서비스 안으로 끌어들였고, 연구자들은 이를 '커뮤니케이션 소비', '플랫폼 팬덤', 아이돌의 '관계 노동' 같은 개념으로 설명한다. 팬이 하던 일과 아이돌이 하던 일이 모두 플랫폼의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노동 논의는 이제 팬과 아이돌 양쪽을 함께 본다.
행동주의 연구는 지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의 BLM과 #StopAsianHate에서 시작해 인도네시아·태국의 시위와 모금, 필리핀 대선의 '시빅 스태닝'까지 사례가 쌓였다. 반면 중국 팬덤 연구는 행동주의가 늘 저항의 모습만 띠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반한 정서 속에서 조용히 소비를 이어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이 연구들을 함께 읽으면, 차트를 위해 다듬어진 조직 능력과 정치 참여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점, 그리고 그 능력이 점점 기업 플랫폼 안에서 길러지고 있다는 점이 함께 보인다. 팬덤의 자율성이 어디까지 유지될지가 다음 연구의 질문이 될 것이다.
K-pop fan labor and an alternative creative industry: A case study of GOT7 Chinese fans
GOT7의 중국 팬을 참여관찰과 심층 인터뷰로 연구해 팬 노동을 전문 노동, 관리 노동, 비숙련 노동의 세 유형으로 나눴다. 저자는 팬 노동이 K-팝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창조적 노동이며, 그래서 K-팝이 일종의 '대안적 창조산업'이 된다고 주장한다. 팬들은 산업의 상품화에 순응하고 착취당하면서도 제작·유통 과정에서 권한을 얻으려 하며, 노동의 양이 '기여하는 팬'과 '자칭 팬'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인다는 관찰도 담았다.
Labour of Love: Fan Labour, BTS, and South Korean Soft Power
정치경제학과 참여문화 이론을 함께 써서 BTS 팬덤 ARMY를 조직된 노동 네트워크로 본다. 팬들이 온라인에서 BTS를 홍보하고 퍼뜨리는 무급의 정동 노동이 쌓이면서, 팬덤 자체가 BTS와 나란히 한국 소프트파워의 능동적 행위자가 됐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산업이 BTS를 국가 브랜딩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팬의 기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The Fans who Consume ‘Communication’ : The Idol Fan Platform and Reorganization of Fandom
위버스·유니버스·리슨 등 팬 플랫폼 이용자 11명을 인터뷰해, 포털 카페·SNS·커뮤니티 갤러리에서 자생적으로 운영되던 무료 팬 커뮤니티가 산업자본이 만든 유료 플랫폼으로 흡수되는 변화를 분석했다. 저자는 기존 팬덤 이론으로는 이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커뮤니케이션 소비론'이라는 틀을 제안한다. 팬이 돈을 내고 사는 것이 콘텐츠만이 아니라 아이돌과의 '소통' 그 자체라는 관점이다.
The Labor Process of Relational Labor: The Case of the K-pop Fan Platform “Bubble”
노동과정 이론으로 팬 플랫폼 '버블'의 인터페이스, 아티스트 계약, 메시지 시스템을 분석했다. 독점자본, 통제, 탈숙련·재숙련이라는 개념을 통해, 팬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돌의 '관계 노동'이 플랫폼 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상품화된다고 주장한다. 팬 노동 논의를 아이돌 쪽의 노동으로 넓혔다는 점에서 이 특집의 다른 글과 짝을 이룬다.
Platform Fandom: Weverse and the Technological Domestication of Fan Community
하이브가 운영하는 위버스와 위버스숍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플랫폼 팬덤'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플랫폼 기술로 스타와 팬의 정서적 유대를 관리하는 기업화된 관계를 뜻하며, 그 결과 팬 공동체는 지리적 특수성을 잃고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할지 스스로 협상하는 힘도 약해진다는 주장이다. 위버스를 미국과 중국의 플랫폼 모델 사이에서 한국 기업의 이익을 밀어붙이는 독자적 유형으로 본 점이 눈에 띈다.
“Make It Right”: Why #BlackLivesMatter(s) to K-pop, BTS, and BTS ARMYs
2020년 미국 BLM 운동에서 K-팝 팬과 아티스트가 왜 정치적 행위자로 등장했는지 BTS 팬덤 ARMY를 중심으로 살폈다. 저자들은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라고 보는데, 흑인 ARMY가 팬덤 내부의 인종차별을 지적하고 BTS와 다른 팬들에게 BLM 지지를 요청한 과정이 그 근거다. 논문은 팬들이 차트와 시상식을 위해 해 온 스트리밍·투표·라디오 신청 같은 조직적 활동도 함께 기록한다.
Exploring Youth Political Participation: K-Pop Fan Activism in Indonesia and Thailand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K-팝 팬 행동주의를 다뤘다. 두 나라 팬들은 인도주의 모금, 새 법안 비판, 정부 반대 시위 등에 참여했고, 논문은 문화 참여와 시민·정치 참여의 교차, 참여와 저항 사이의 긴장, 정동과 집단 정체성, 그 영향이라는 네 축으로 이를 분석한다. 미국 BLM 사례에 쏠린 논의를 동남아시아로 넓힌 연구다.
Contested fandom and nationalism: How K-Pop fans perform political consumerism in China
사드(THAAD) 배치 이후 반한 정서가 이어지는 중국에서 K-팝 팬들이 어떻게 소비를 이어 가는지 웨이보 디지털 민족지로 살폈다. 팬들은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의식적인 한류 소비자로 행동하며, 이 '정치적 소비주의'가 팬 행동주의의 한 형태이자 민족주의자들과 정면충돌을 피하는 안전판 구실을 한다. 행동주의가 늘 거리 시위나 해시태그 운동의 모습을 띠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We Are Bulletproof”: The Transcultural Power of Fandom in #StopAsianHate
2020년 3월 19일~2022년 5월 31일의 #StopAsianHate·#StopAAPIHate 트윗 92만 271건을 분석했다. 하루 5,000건을 넘는 '급증일' 25번 가운데 11번은 2021년 애틀랜타 지역 총격 직후였지만, 12번은 BTS와 관련돼 있었다. LDA·NMF 토픽 모델링으로 해시태그 사용이 BTS 팬덤을 중심으로 바뀌어 간 과정을 보여 주며, 팬덤의 정서적 연결이 반아시아 인종차별에 관한 지구적 담론을 넓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Civic Stanning and the Semiotics of K-Pop Fan Activism in the Philippines
2022년 필리핀 대선에서 레니 로브레도 후보를 지지한 K-팝 팬들의 실천을 디지털 민족지로 분석했다. 팬들은 가사·이미지·팬캠 같은 K-팝의 기호를 다시 엮어 선거용 메시지를 만들었고, 저자들은 이를 팬 기반 시민성의 수행인 '시빅 스태닝(civic stanning)'이라 부른다. 익숙한 팬덤 미학이 제약이 많은 정치 환경에서 정치 참여의 언어로 쓰이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고른 기준
OpenAlex에서 2020-01-01 이후 논문을 'k-pop fan activism', 'BTS ARMY', 'k-pop fandom labor', '팬덤 노동', 'K-pop 팬덤' 등으로 검색해 제목·초록을 확인했다. 팬 노동·팬 플랫폼과 팬 행동주의를 직접 다루고 초록에서 연구 대상과 방법이 확인되는 논문만 골랐으며, 인용 수가 많은 연구를 우선하되 국내 학술지(한국언론학보)와 동남아·남미·중국 사례가 함께 들어가도록 구성했다. 초록이 잘린 논문(Kanozia & Ganghariya 2021)과 '문화 보고서' 형식의 글(Cho 2022)은 제외했다. 인용 수는 2026-10-09 OpenAlex 기준.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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